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화탐구

write.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클래식?
이젠 가장 트렌디한 취향!
조용함이 트렌드가 되는 순간


클래식은 어딘가 고전적인 취향처럼 여겨져 왔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인식은 바뀌고 있다. 2030세대의 클래식에 대한 열광을 보면 현재 클래식이 가장 트렌디한 취향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클래식 공연 사진1

2030세대를 취향 저격한 클래식

특정 계층이나 중장년층의 전유물? 혹은 고루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예술? 과거 클래식 음악에 덧씌워지곤 하던 이런 이미지는 여전히 유효할까. 그렇지 않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4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클래식 음악 장르는 대중음악 콘서트와 뮤지컬에 이어 전체 공연 시장에서 티켓 파워 3위를 기록할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을 주도하는 핵심 관객층이 눈에 띈다. 중장년층이 아니라 2030세대다. 이들에게 클래식은 남들과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희소한 취향’이다.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스낵 컬처(snack culture,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기는 콘텐츠 소비 형태로, 상황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문화)의 도파민에 빠져 있을 때, 이들은 클래식의 조용하고 고양된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모두에게 똑같은 디지털 경험과는 다른 나만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클래식 공연의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은 아이돌 그룹 공연을 방불케 한다.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경우, 단 30초 만에 공연 티켓 전석이 매진되는 일도 벌어진다. 2022년 윤이상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천재 첼리스트 한재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25년 1월에 열린 ‘2025 경기아트센터 신년음악회’에서 한재민과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과의 협연 역시 팬들의 뜨거운 예매 열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클래식이 이처럼 팬덤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그 소비층이 2030세대로 젊어진 이유도 있지만, 클래식 아티스트들 역시 과거의 거장들과 달리 유튜브 라이브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연습 과정과 음악적 고뇌를 대중들과 가감 없이 공유하는 친밀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객층이 젊어지면서 그 눈높이에 맞춰 공연의 기획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엄숙한 무대를 벗어나 공감각적 몰입을 극대화한 공연들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 최대 몰입형 미디어아트 극장인 ‘빛의 시어터’에서 개최된 ‘클래식 위크엔즈(CLASSIC WEEKENDS)’ 페스티벌이다. 1500평 공간과 21m 층고를 꽉 채운 360도 미디어아트 프로젝션 맵핑(건물이나 공간 표면에 영상을 투사해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영상 기술)이 결합된 이 공연은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연주와 더불어 환상적인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디지털 영상에 익숙한 현 관객들을 맞아 클래식 공연도 보다 새롭고 세련된 방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 공연 사진2

숏폼 시대의 반작용,
‘디톡스 문화’로서의 클래식

최근 불고 있는 클래식 열풍의 원인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현 사회의 ‘도파민 과잉’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즉각적이고 강렬한 자극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15초 남짓한 숏폼 콘텐츠의 홍수는 심리적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디지털 네이티브인 2030세대들은 그 반작용으로 디톡스 문화를 찾기 시작했다. 일부러 스마트폰을 맡겨 일정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없게 하는 북카페를 찾고, 귓속말을 포함한 일체의 대화를 전면 금지하고 포스트잇 필담만 허용하는 카페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낸다.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소음과 자극이 차단된 ‘고요함’과 ‘정적’의 시간을 가지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완벽한 ‘느린 콘텐츠’로 급부상했다. 보다 깊게 파고들어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클래식의 특징은 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깊게 파고들어가는 ‘디깅(Digging) 문화’와도 맞물려 힘을 발휘했다. 곡의 구조와 감정선을 이해하기 위해 작곡가 특유의 작품 번호(비발디의 RV, 베토벤의 WoO, 모차르트의 K 등)를 학습하고, 악장 간의 유기적인 서사를 인지해 음악을 듣는 식이다. 한편 클래식 선율은 복잡하고 불안한 현대인들의 내면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치유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낮 동안 과도하게 자극받은 신경계를 어루만지는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녹턴(야상곡)’,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을 소재로 거대한 철학적 사유를 제공하는 ‘레퀴엠(진혼곡)’, 억눌린 감정의 분출을 돕는 오페라의 ‘아리아’ 등은 상처받고 지친 우리들에게 강력한 정서적 안식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클래식 공연 사진3

국제 콩쿠르를 휩쓰는
K-클래식의 탄생

클래식이 ‘조용한 취향’을 찾는 대중에게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강력한 요인은 바로 국제 무대를 제패하고 있는 K-클래식 젊은 아티스트들의 눈부신 활약이다. 최근 수년간 한국의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거둔 성과는 전 악기와 성악 부문에 걸쳐 이뤄지는 압도적인 양상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들의 예술적 성취는 거대한 팬덤 형성과 공연장 매진 사태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의 성과만 봐도 독보적이다. 2023년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는 김계희(바이올린 1위), 이영은(첼로 1위), 최연수(성악 1위)가 나란히 정상에 오르며 무려 3개 부문을 동시 석권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2024년 정통 클래식 본고장 독일의 ARD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는 박사무엘이 성악 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스위스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는 성악 부문 김정래(2위)와 작곡 부문 유상민(3위)이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2024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이현정이 역대 최연소 준우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고, 최지은은 2024년 이탈리아 부세토 베르디 국제 성악 콩쿠르 우승에 이어 2025년 스페인 프란치스코 비냐스 국제 성악 콩쿠르까지 연이어 석권하는 놀라운 기량을 보여줬다. 한편 이미 세계 무대에서 입지를 굳힌 피아니스트 조성진 역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6년 3월 통영국제음악제를 비롯해 해외 주요 공연장에서 리사이틀을 이어가며 K-클래식의 위상을 확장하고 있다.

클래식 공연 사진4

 

올해 클래식 시장은 이러한 ‘조용한 취향’과 높아진 예술적 눈높이를 가진 관객들에 맞춰 전례 없이 다양해질 전망이다. 예술의전당의 올해 라인업은 이러한 클래식 시장의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5월)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피아노 거장들을 엄선해 집중 조명하는 SAC 월드스타시리즈(5월, 6월, 9월), 20세기 바이올린 역사의 산증인인 거장 핀커스 주커만과 KG필하모닉의 협연(5월), 러시아를 대표하는 두 피아니스트 미로슬라브 꿀띠쉐프와 세르게이 타라소프의 협연(6월) 등등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공연들이 펼쳐질 예정이다.
최근 클래식 음악의 재유행과 확산 현상은, 단기적인 레트로 마케팅이나 소수 문화 애호가들의 과시적 소비가 만들어낸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그보다는 도파민 과잉의 시대에 정서적인 안정과 균형을 지켜내려는 반작용에 가깝다. 디톡스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는 현대의 속도와 소음, 자극과 정반대에 위치한 클래식 음악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정신없이 돌아가고 소비되는 디지털 사회 속에서 클래식은 자극 없이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클래식이 제공하는 고요한 시간과 정서적 위로는 파편화된 현대인들의 삶에 균형을 잡아주는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디지털 사회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우리에게 현재 불고 있는 클래식 열풍은 일회적인 유행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클래식이라는 조용한 취향이 지금 가장 트렌디한 취향이면서, 앞으로도 확산될 하나의 문화가 될 거라 여겨지는 이유다.

바이올린 호른 피아노 트럼펫
제목 데코

지금 놓치면 안 될 클래식 공연

6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미로슬라브 꿀띠쉐프 X

세르게이 타라소프

러시아 피아니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두 거장이 만나 라흐마니노프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선보입니다. 세 개의 협주곡을 한자리에서 조망하며 러시아 음악 특유의 압도적인 스케일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6월 18~2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국립오페라단

<피터 그라임스>

20세기 오페라의 걸작이자 국내 초연작으로, 집단 폭력 앞에 놓인 개인의 고립을 서늘하게 그려냅니다. 차가운 바다를 닮은 강렬한 음악과 현대적인 연출이 만나 숨 막히는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6월 24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2026 SAC 월드스타시리즈 -

존 오코너 리사이틀

베토벤 해석의 권위자 존 오코너가 전하는 깊이 있고 서정적인 피아니즘을 만날 수 있는 무대입니다. 베토벤부터 아일랜드 작곡가 존 필드의 녹턴까지, 정통 클래식의 단단한 아름다움을 전합니다.

7월 14일, 19일 롯데콘서트홀

조성진 리사이틀 &

체임버 콘서트

2026 상주 음악가로 선정된 조성진이 베를린 필 주역들과의 실내악(14일) 및 독주회(19일)를 가집니다. 바흐부터 쇼팽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프로그램으로 롯데콘서트홀 개관 10주년의 정점을 장식합니다.

7월 23일~8월 2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
대관령 야외공연장

2026 평창대관령음악제

<계승과 혁신>

양성원 예술감독이 이끄는 이번 축제는 클래식의 전통과 현대적 변주를 'Legacy and Innovation'이라는 주제로 풀어냅니다. 에스메 콰르텟 등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대관령의 시원한 바람 속에 강렬한 연주를 펼칩니다.

9월 3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2026 SAC 월드스타시리즈 -

알렉산더 가지예프 피아노 리사이틀

쇼팽 콩쿠르 수상자이자 철학적 해석으로 정평이 난 가지예프가 선보이는 밀도 높은 피아노 독주 무대입니다. 도파민 넘치는 일상에서 벗어나 사색과 영감을 선사하는 '디톡스' 같은 선율을 만날 수 있습니다.

10월 6일 롯데콘서트홀

올리비에 라트리 &

이신영 포핸즈 오르간 무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상임 오르가니스트인 거장 라트리와 이신영 부부가 선보이는 특별한 듀오 무대입니다. 네 손이 만드는 웅장한 사운드를 통해 파이프 오르간이 지닌 입체적인 음향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10월 22일 롯데콘서트홀

유카페카 사라스테 &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144년 만에 첫 내한하는 핀란드 명문 악단이 지휘자 사라스테와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함께 상륙합니다. 북유럽 클래식의 정수를 담은 시벨리우스의 선율로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더할 예정입니다.

11월 6일~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마린 알솝 &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거장 지휘자 마린 알솝과 미국 명문 악단 필라델피아가 내한하여 2026년 클래식 시장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특히 피아니스트 임윤찬과의 협연이 예정되어 있어 올해 가장 뜨거운 피날레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공연 일정 및 세부 내용은
주최 측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