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VOL.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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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연금 이모저모 | write. 김일규 한국경제신문 도쿄 특파원

100년 연금 토대 만든 일본

21년 전 개혁,
지금 일본 연금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일본은 2004년 공적연금 개혁을 통해 보험료율을 대폭 인상하고 연금 지급액의 인상률을 조정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100년 안심’을 내걸고 추진된 이 개혁은 큰 반발을 샀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일본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장치로 자리 잡았다. 연금 인상폭을 제한하는 ‘거시경제 슬라이드’, ‘국고 지원 확대’, ‘후생연금 보험료율 상향’ 등 일본이 구축한 연금 시스템은 고령화 시대를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일본은 2025년 공적연금(기초연금, 후생연금) 지급액이 1.9% 인상됐다. 물가와 임금 상승에 따라 3년 연속 늘었다. 주목할 점은 연금 지급액 인상률 조정 장치인 ‘거시경제 슬라이드’가 2004년 제도 도입 후 처음으로 3년 연속 발동했다는 점이다. 이 제도는 일본의 연금이 100년 뒤에도 바닥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토대 중 하나다.

지난해 일본 공적연금 재정 검증 결과, 성장률 등 경제 상황이 과거 30년과 같은 수준에서 움직인다고 가정할 경우 약 30년 뒤 부부 2인 ‘모델 가구(평균소득으로 40년 근무한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의 소득대체율(기초연금+후생연금)은 50.4% 수준으로 전망됐다. 이는 소득대체율을 50% 이상으로 규정한 일본의 법정 목표치를 벗어나지 않고, 5년 전 실시한 검증 결과와 비교하면 호전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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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 슬라이드 3년 연속 발동

2025년 일본 자영업자 등이 가입한 기초연금 지급액(보험료 40년 납부·1956.4.2.이후 출생 기준)은 월 1308엔(한화 약 1만2천 원) 증가한 월 6만9308엔(한화 약 66만 원)이다. 회사원 등이 가입한 후생연금은 모델 가구 기준 월 4412엔(한화 약 4만2천 원) 늘어난 월 23만2784엔(한화 약 220만 원)이 지급된다. 모델 가구는 평균적인 소득인 상여금 포함 월 45만5000엔(한화 약 435만 원)으로 40년 근무한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를 말한다.

일본 공적연금은 물가와 임금 변동에 따라 매년 조정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은 미래세대 연금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고령자 지급액의 인상률을 조정하는 거시경제 슬라이드 장치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연금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도입한 이 장치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조정률을 반영하여 지급액을 임금 또는 물가 상승분 이하로 낮춘다. 2025년 당초 연금 인상률은 명목임금 상승률인 2.3%였지만, 인상률을 조정에 따라 0.4%포인트를 차감한 1.9%가 최종 인상률이 됐다.

거시경제 슬라이드는 2004년 도입됐다. 디플레이션 국면에서는 발동하지 않는다는 룰에 따라 지난해까지 총 5회 시행됐다. 일본이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물가와 임금 상승 국면에 진입하면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 연속 발동하게 됐다. 연금 인상률 조정폭은 처음 시행했던 2015년엔 0.9%포인트였지만, 2025년은 0.4%포인트로 축소됐다. 고령화가 빨라지면 조정폭이 커지지만,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을 하며 보험료를 내는 고령층이 늘면서 조정폭이 축소됐다.

일본 연금재정 개선에 기여한 다른 하나는 보험료율이다. 일본은 2003년 13.58%였던 후생연금 보험료율을 2004년부터 매년 단계적으로 인상해 2017년 18.3%까지 올렸다. 2004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100년 안심’을 내걸고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결과다. 2004년 연금 개혁 이후 치러진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은 야당에 패배했다. 인기 없는 개혁의 대가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1년 이후 일본의 역대 총리 중 호감도 1위로 꼽힌다.

일본은 2004년 개혁을 통해 기초연금 재정의 국고 부담 비율도 기존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끌어올렸다. 재원은 소비세 인상을 통해 마련했다. 한국도 확실한 재원을 조성해야 연금의 지속성 확보와 불신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공적연금 소득대체율 61.2%

일본의 연금 역사는 매우 길다. 공적연금 제도의 시작은 메이지 시대 초기에 도입된 ‘은급’ 제도였다. 1867년 육군 은급령, 1875년 해군 은급령이 도입됐고 1884년 공무원까지 확대됐다. 이 제도는 군인, 관료에 대한 정부의 보상적 급여 성격이었다. 민간 근로자 대상 연금은 1939년 선원보험법에서 출발했다. 1942년엔 남성 블루칼라에 한해 근로자 연금보험법이 적용됐고, 이후 사무직 등으로 확대되며 후생연금으로 재탄생했다.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 국민 연금이 출범한 것은 1961년이다. 일본은 전 국민 연금 시행 이후 급여 개선에 주력했다. 1965년 ‘1만엔 연금’, 1973년엔 ‘5만엔 연금’을 내걸었다. 이와 함께 물가 연동제를 도입, 연금 수준의 실질 가치를 유지하도록 전년도 물가 변동에 따라 다음 해 연금액을 자동 조정했다. 1985년엔 기초연금을 도입해 연금 제도를 일원화했다.

현재 일본의 공적연금 제도는 1층을 맡는 기초연금, 2층 역할을 하는 후생연금으로 구성돼 있다. 기초연금 피보험자는 1호(20~60세 농민·자영업자·학생 등), 2호(회사원·공무원), 3호(2호의 배우자) 등 세 종류다. 기초연금 보험료는 2025년 기준 월 1만7510엔(한화 약 16만 원)이다. 지급 개시는 원칙적으로 65세다. 후생연금 보험료는 임금에 비례한다. 보험료(18.3%)는 노사가 절반씩 부담하는 구조다. 기초연금과 마찬가지로 원칙적으로 65세부터 지급이 개시된다. 일본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현재 61.2% 수준이다. 근속 40년을 채운 65세 남편과 60세인 전업주부 아내의 연금을 더한 기준이다. 부부 2인 기초연금(13만4000엔)과 후생연금(9만2000엔)을 더한 금액(22만6000엔)을 현역 남성 평균 수입(37만엔)으로 나눈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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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소득대체율 하락 고민

일본도 고민이 있다. 지난해 5년마다 이뤄지는 공적연금 재정 검증에서 거시경제 슬라이드 작동으로 향후 소득대체율이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 것이다. 특히 기초연금 소득대체율은 2024년 36.2%에서 2057년 25.5%까지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비해 후생연금 소득대체율은 2024년 25.0%에서 2026년 24.9%로 내린 뒤 하락세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일본 정부는 기초연금 지급액을 30% 높이는 방안을 추진했다. 재정 형편이 나은 후생연금 적립금을 활용해 향후 수급액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기초연금을 올리는 방안이다. 그러나 최근 마련한 연금 개혁 법안에선 기초연금 인상안이 빠져 있었다. 올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집권 자민당이 후생연금에 가입한 직장인 표를 의식한 결과다.

야당에서는 핵심이 빠진 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팥소가 빠진 단팥빵”이라며 수정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 마에하라 세이지 공동대표도 “기초연금 인상을 제대로 해야 함에도 빠졌다”며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은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과 연금 제도 개편안을 다시 마련했다. 연금개혁 법안 부칙에 기초연금 지급액을 인상한다는 내용을 담은 수정안을 함께 제출했다. 후생연금 적립금으로 기초연금 지급액을 올리는 것이 골자다. 다만 인상 여부는 2029년 연금 재정 검증을 거쳐 판단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법안에 후생연금 가입 요건 중 연봉 106만엔(한화 약 1,017만 원)이나 종업원 51명 이상 등을 단계적으로 완화해 가입 대상자를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나 단시간 근로자까지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또 고소득층의 후생연금 보험료를 2027년 9월부터 단계적으로 올리기로 했다.

일본 역시 중장기 과제는 저출산·고령화 대응이다. 현지에선 기초연금 보험료 납부 기간을 현행 40년(20~60세)에서 45년(20~65세)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소득층의 보험료 납부 부담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설득은 과제다. 기초연금 재원이 가입자 납부보험료 절반, 국고 지원 절반으로 구성된 만큼 정부 부담이 증가하는 문제도 있다.

이와 관련, 일본 재계는 지난해 고령자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할 것을 정부에 제안했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가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재촉할 것이라는 게 일본 재계의 판단이다. 일본 재계는 고령자 기준 상향이 노동력 확보와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 유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눈에 보는 일본 공적연금
1

일본
연금제도
구조

피라미드 이미지

2층

1층

2층: 후생연금

  • 대상: 회사원, 공무원 등
  • 보험료: 소득비례(보험료율 18.3%, 노사 50:50 부담)
  • 지급개시: 65세

1층: 기초연금(국민연금)

  • 대상: 만20~60세모든 국민(자영업자, 농민, 학생 등)
  • 보험료: 정액(2025년 기준 월 17,510엔 한화 약 157,600원)
  • 지급개시: 65세
2

2004년
연금개혁

핵심

하락 아이콘

보험료율 인상 후생연금

2004년 13.58% → 2017년 18.3%까지
단계적 인상

국고지원 아이콘

국고지원 확대 기초연금

기초연금 재정의 국고 부담 1/3 → 1/2로 상향

인구 아이콘

거시경제 슬라이드 도입 기초연금+후생연금

인구 감소·수명 연장 반영해 연금 인상률 자동 조정
(지급액 억제)

아이콘

지급개시 연령 상향 기초연금+후생연금

60세 → 65세로 단계적 상향

3

최근 상황 및

주요 수치

2025년 기준 연금 지급액

  • 기초연금(40년 납부): 월 69,308엔(한화 약 66만 원) (2025년 기준, 만 65세부터 지급)
  • 후생연금(모델 가구): 월 232,784엔(한화 약 223만 원)

소득대체율(2024년)

  • 공적연금(모델 가구 기준): 61.2%
  • 2057년 전망: 50.4% (법정 목표치 50% 이상 유지)

거시경제 슬라이드

  • 2022~2024년 3년 연속 발동
  • 올해 인상률: 명목임금 상승률 2.3% → 실제 인상률 1.9%(0.4%p 조정)
4

남은 과제와 논쟁

하락 아이콘

기초연금 소득대체율 하락

2024년 36.2% → 2057년 25.5% 전망

저금통 아이콘

기초연금 보험료 납부기간 연장

40년(만 20~60세) → 45년(만 20~65세)

고령자 아이콘

고령자 기준 상향 제안

65세 → 70세(일본 재계 제안)

아이콘

정치적 쟁점

기초연금 인상안 논란,
저소득층 부담 증가 및
정부 재정 부담 우려

5

시사점

  • “더 내고, 덜 받는” 구조적 개혁으로 100년 지속 가능한 연금 토대 마련
  • 저출산·고령화 대응 위한 지속적 제도 개선 필요
  • 한국 등 타 국가에 연금개혁의 교훈 제공
※ 본 글은 작성자의 개인 의견으로, 국민연금공단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