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전, 고려의 도공은 여름의 풍경을 참외 한 알에 담아냈다. 비취빛 유약 아래 정갈한 곡선으로 빚어진 ‘청자 참외모양 병’. 그 속엔 단순한 과일의 형상을 넘어, 여름의 바람과 햇살이 깃들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비취빛 청자처럼 맑고 청량한 맛을 자랑하는 참외 샐러드로 계절의 맛을 새롭게 만나본다.
여름을 빚은 손끝,
청자 참외모양 병
무더운 여름날, 시장에 쌓인 노란 참외 더미를 지나칠 때면, 그 싱그러운 향기와 부드러운 곡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마 천 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고려 시대의 도공 한 사람이 여름날 참외를 보며, 문득 그 모습을 청자에 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탄생한 유물이 국보 제94호 ‘청자 참외모양 병’이다.
이 병은 12세기 고려 중기에 만들어졌다. 높이 23cm로, 매끄럽고 유려한 곡선과 비취빛 유약이 특징이다. 참외의 형태를 그대로 본떠 만들어졌고, 세로로 이어진 골마다 유약의 농담이 자연스럽게 흐르며 빛과 만나 깊은 입체감을 만들어낸다. 특히, 꼭지 부분까지 세밀하게 재현된 모습은 이 병이 단순한 생활용기가 아닌 예술품임을 보여준다.
병의 표면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마치 아침 햇살을 품은 참외밭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바람에 이슬 맺힌 참외가 살짝 드러나고, 잎사귀 사이로 여름이 흐르는 듯한 장면이 그려진다. 단순히 과일을 본뜬 도자기가 아니라, 여름이라는 계절 그 자체를 담아낸 그릇으로 보인다.

천 년을 건너온 황금빛 열매, 참외
참외는 고온 건조한 기후에서 자라나는 과일로,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돼 실크로드를 따라 한반도까지 전해졌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대 여름 과일로 '과(瓜)'가 등장하는데, 참외를 포함한 박과류 과일로 해석되며 이 시기부터 참외가 여름 과일로 사랑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에 “고려의 참외는 크고 향이 짙으며, 중국 것보다 맛이 좋다”고 기록했다. 고려의 토양과 기후가 참외 재배에 적합했음을 알 수 있고, 이 시기에도 즐겨 먹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참외는 대표적인 여름 과일로 자리 잡았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참외가 여름에 더위와 갈증을 달랜다고 기록되어 있고,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참외의 향과 맛을 극찬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경상도 성주가 ‘참외의 명산지’로 소개된다. 성주 참외는 오늘날까지 전국적으로 명성을 이어오며, 500년이 넘는 재배 역사를 자랑한다.
참외는 단순한 여름 과일이 아니라, 세월을 따라 전해져온 한국인의 여름을 상징하는 존재다. 천 년 전 도공이 청자에 참외 모양을 담았던 것도, 아마 그런 특별한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참외, 자연이 빚은 천연 강장제
참외가 여름철 인기 간식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수분 함량이 90% 이상으로 갈증 해소에 좋고, 칼륨도 풍부해 체내 나트륨 배출과 부종 완화, 혈압 조절에 도움을 준다.
또한 비타민 C, 아연, 식이섬유, 글리코겐 등 다양한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어 피로 회복과 소화 기능 개선, 면역력 강화에도 효과적이다. 특히 아연은 남성 건강에 중요한 미네랄로, 참외는 ‘여름철 스태미나 과일’로도 알려져 있다.
열량은 낮고 수분 함량이 높아 다이어트 식단에도 제격이다. 100g당 약 30kcal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며, 풍부하게 함유된 식이섬유가 장운동을 도와 변비 예방에 효과적이다.
이처럼 참외는 맛과 건강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다. 천 년 전 청자에 담기던 그 아름다움은, 오늘날 우리의 식탁 위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