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선생은 일흔을 넘긴 지금도 매일 원두를 볶고 손수 드립 커피를 내린다. 1988년 혜화동에서 ‘보헤미안’을 열며 시작된 그의 길은 강릉을 커피의 도시로 만들었고, 더 멀리 라오스의 커피 농장으로 이어졌다. 바닷가 카페에서 이른 아침부터 로스팅 연기를 피워 올리며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은 여전히 현역 장인의 뚝심을 보여준다. 기술보다 사람을, 돈보다 행복을 중시하며 커피와 함께 걸어온 세월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인생 이야기다. 한 잔의 커피를 통해 그는 오늘도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국내에 핸드드립 문화를 알린
‘1서3박’ 중 유일하게
현역으로 활동 중입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시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저를 ‘마지막 남은 커피 1세대’, ‘전설의 바리스타’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호칭보다는 지금도 매일 원두를 볶고 물줄기를 고르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1988년 혜화동 로터리에 ‘보헤미안’이라는 이름으로 첫 커피숍을 열었고, 그 이전에는 1970년대부터 경기도와 강원도를 오가며 젖소 목장을 운영했습니다. 농장 운영의 어려움과 개인적인 사정으로 도시를 그리워하게 되었고, 도쿄에서 외식 기술을 배우던 중 커피와 인연을 맺으면서 평생의 업이 되었습니다. 2000년에는 강릉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한결같이 커피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 이름보다 ‘보헤미안’이라는 이름으로 더 기억되는 듯합니다.
“이제는 제 이름보다
‘보헤미안’이라는 이름으로
더 기억되는 듯합니다.”
1988년 혜화동 로터리에
‘가배 보헤미안’으로
첫 카페를 여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여러 도시 중에서
강릉에 자리를 잡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혜화동에서 카페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단순히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당시만 해도 믹스커피가 전부이던 시대라, 제가 내린 핸드드립 커피는 손님들에게 낯설면서도 신선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의 북적임과 분주함은 제 성향과 맞지 않았습니다. 고려대 후문 지하에서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으나, 결국 조용한 삶을 원해 강원도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오대산 근처에서 시작했으나 연곡 바닷가에 자리를 잡으며 제 삶의 리듬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사업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정돈하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후배 바리스타들이 강릉에 모여들며 오늘의 ‘커피 도시 강릉’이 형성되는 데 작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커피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무엇이었고,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커피 중심이었습니다. 원두의 품질, 추출 기술, 맛 하나하나에 몰두했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습니다. 결국 커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커피가 주인공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좋은 커피란 단순히 맛을 넘어, 마시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세월이 주는 힘도 있었지만, 책에서 얻은 배움도 컸습니다. 《맛있는 사람들》에서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네 가지 방법을 언급하는데, 그중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제 삶과 가장 닮아 있었습니다. 또 《커피의 역사》에서 본 “팔자와 운명을 바꾸는 커피가 진짜 맛있는 커피다”라는 문장은 저에게 깊은 울림이 되었지요. 커피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인생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커피를 만들고
카페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온 원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늘 ‘커피냐, 사람이냐’ 사이에서 고민해왔습니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제 결론은 결국 사람입니다. 사람이 원하는 것이 다르듯, 커피 역시 마시는 이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커피를 단순히 기술로만 대하지 않고, 늘 대화하듯 다가가고자 합니다. “내가 발돋움하면 너도 발돋움한다.” 저는 커피와 함께 성장해야 진정한 발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혼자 앞서가서는 안 되며, 커피도 함께 발돋움해야 합니다. 지금도 매일 원두를 볶고 물줄기를 고르며, 커피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커피란 무엇이고,
커피를 통해 전하려고
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닙니다. 커피는 제 삶을 지탱해 준 동반자이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는 벗이 되어주었습니다. 소망이 있다면,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오늘도 내일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행복보다는 마음의 평안, 정신적인 안정 같은 것을 주는 존재가 바로 커피라 생각합니다. 손님들이 제 커피를 마시며 잠시라도 위로받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커피는 제 삶을 지탱해 준 동반자이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는 벗이 되어주었습니다. 결국 제가 전하고 싶은 것은 커피 한 잔이 줄 수 있는 ‘작은 평안’과 ‘조용한 기쁨’입니다.
지난 3월 서울우유와 협업한
‘강릉커피 아인슈페너’가
출시했습니다.
‘커피 장인’으로 불리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오고 계신데,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서울우유와의 인연은 사실 목장을 운영하던 시절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당시에는 원유를 납품하던 관계였는데, 세월이 흘러 커피로 다시 연결된 것입니다. 저는 늘 예상치 못한 만남과 오래된 인연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습니다.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잔의 커피를 통해 낯선 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만남 속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곤 합니다. 나이가 들면 도전을 멈춰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오히려 지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커피와 사람 모두 미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저는 계속해서 시도하고 배웁니다. 결국 저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은 ‘좋은 인연’과 ‘커피가 주는 행복’입니다.
“커피와 사람 모두
미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저는 계속해서 시도하고 배웁니다.
결국 저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은 ‘좋은 인연’과
‘커피가 주는 행복’입니다.”
바리스타로서의 삶에
국민연금이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국민연금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달 꼬박꼬박 받는 연금은 단순한 생활비가 아니라, 제가 살아온 시간을 국가가 인정해주는 듯한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오랜 기간 사업을 해왔기에 받을 연금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연금은 저에게 안정을 주는 버팀목이자, 지금까지 커피를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연금은 어떻게 준비하고,
또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가요?
저는 국민연금에 가입해 꾸준히 납부했습니다. 지금 받고 있는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꾸준히 납부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힘이 됩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말하듯, 노후 생활비는 연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일을 하며 다른 수입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금이 있기에 더 안정감 있게 하루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인생 2막을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를 들려주세요.
2027년부터는 가게를 경상북도 울진 바닷가로 옮길 예정입니다. 지금 있는 곳은 점차 시끄러워지고 사람이 많아져, 더 조용한 곳에서 커피와 마주하고 싶습니다. 울진역은 무인역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바다와 가까워 커피를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 생각합니다. 영업일을 지금보다 줄일지 그대로 유지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지만, 커피는 백 살까지 이어가고 싶습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로스팅과 추출 또한 제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일상의 루틴입니다. 결국 제 바람은 단순합니다. 커피와 함께 오래 살며, 그 속에서 오늘도 내일도 행복을 이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