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식탁 위에 놓인 배추 한 장, 그리고 19세기 옥 속에 새겨진 배추 한 포기.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소장품인 ‘취옥백채(翠玉白菜)’는 단순한 채소 조형을 넘어, 생명과 풍요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물로 사랑받아왔다. 정교한 옥조각을 통해 배추가 지닌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날 겨울철 따뜻한 식탁위 ‘배추찜’ 한 접시로 이어지는 풍경을 함께 그려본다.
옥 속에 깃든 생명의 상징,
취옥백채
차가운 옥에서 피어난 연한 배추 한 포기. ‘취옥백채’는 19세기 청나라 말기에 제작된 소형 옥조각으로, 길이 약 19cm. 흰색과 연녹색이 섞인 청옥의 색을 활용해 배추의 줄기와 잎을 표현했다. 가까이서 보면 잎맥 하나하나가 실물처럼 섬세하게 말려 있어 실제 채소보다도 더 생동감 넘치며, 그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은 다산과 번영의 상징 여치와 메뚜기는 마치 생명력까지 전달하는 듯하다.
‘취옥백채’는 단순히 솜씨를 뽐내기 위한 조각이 아니다. 일상 속 식재료에 담긴 풍요와 생명, 그리고 삶의 의미를 하나의 예술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단단한 광물에서 시작된 형상이지만, 그 안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정의 결이 살아 있다.
땅에서 피어난 지혜,
배추의 역사
배추는 오늘날 익숙한 채소지만, 그 기원은 중앙아시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전해졌고, 삼국시대부터 자생적으로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초기에는 채소라기보다는 약재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중국의 『신농본초경』이나 조선의 『향약집성방』에는 배추가 체기를 다스리고 열을 내리는 약초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는 김장 문화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며, 『증보산림경제』와 같은 농서에 배추의 재배법, 수확 시기, 절임과 저장 방식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배추는 단순한 채소를 넘어 겨울을 나기 위한 중요한 저장 식재료로 자리 잡게 된다.
왕실에서도 배추는 귀한 식재료였다. 조선의 정조는 평소 음식에서 자극적인 것을 삼갔고, 아침상에는 새우젓을 곁들인 배추국을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정조실록』에 전한다. 정조는 “자극 없는 음식이 몸을 살린다”고 말하며 몸을 다스리는 데에 있어 배추 같은 순한 채소를 높이 평가했다.
겨울의 정수,
배추가 건네는 위로
배추는 겨울철 식탁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든든한 재료다. 수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속을 부드럽게 달래주고, 비타민 C는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칼슘과 칼륨도 함유되어 있어 혈압 조절과 뼈 건강에도 이롭다. 열량이 낮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며, 특히 기름지고 무거운 겨울 음식 사이에서 배추는 산뜻한 균형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채소다.
배추의 진가는 조리법을 가리지 않고 드러난다. 찌고, 삶고, 부치고, 절이면 각기 다른 식감과 풍미가 살아난다. 그 부드러움과 단맛은 자극 없이 몸을 덥히고, 자연스레 마음까지 편안하게 한다. 이렇게 배추는 단순한 제철 채소가 아니라, 계절을 견디는 우리의 방식을 함께 담아내는 식재료다.
그래서일까. 배추 한 장을 찢고, 물기를 닦고, 불 위에 올리는 그 과정은 소박하지만 깊은 위로가 된다. 오늘 우리는 배추로 겨울을 견디고, 그 속에서 따뜻함을 다시 배운다.

